2011년 10월 27일 목요일

왜 SW가 이슈인가 - 변화에 빨리 적응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


필자: 김성우, 서울대학교 네트워크보안연구소 박사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동전화 산업의 주도권은 이동통신사업자(이하 이통사)에게 있었다. 이동전화에 사용되는 서비스 하나하나까지 이통사에게 많은 결정권이 주어졌다. 각종 게임이나 음악 등 부가 서비스 제공사들도 소비자보다 이통사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나마 낮은 수익 배분율로 인해 개발 분위기도 그리 높지 않았다. 게다가 엄청나게 비싼 데이터 접속 및 사용요금은 사용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휴대폰 제조사들도 새로운 기능보다는 이용료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접근한 나머지 디자인만 바꾼 휴대전화를 시장에 쏟아 냈다. 공급자 위주의 폐쇄적 독과점 체제였던 것이다.

주도권은 통신사에서 사용자로!
2007 6, 애플은 AT&T를 통해 아이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휴대전화를 출시한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주력으로 하는 애플은 이 같은 기존의 휴대전화 산업 규칙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그렸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비하면 기존 업계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로 연결되는 생태계는 소위 너무 구렸다’.

AT&T는 휴대전화용으로 자사 망을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애플의 자유에 맡기다시피 하는 과감한 결단을 했다. 이는 사실상 사업의 주도권을 제조사에게 넘기는 것으로 전통의 이통사에게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버라이즌에 이은 만년 2위인 AT&T로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폰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폐쇄적 휴대전화를 쓰던 사용자들은 새로운 디자인과 인터페이스 그리고 멀티터치와 와이파이가 지원되는 아이폰의 혁신적인 기능에 열광하게 된다. 또한 누구나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해 올릴 수 있게 됐고, 수익의 70%라는 높은 배분율의 앱스토어는 전 세계 프로그래머들을 감동시켰다. 현재 50만 개가 넘는 앱이 앱스토어에 등록돼 있으며, 지금도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의 앱이 제작되고 있다. 아이폰 덕분에 AT&T4년 만에 버라이즌을 턱 밑까지 쫓아오게 되었다.

3년 후 한국(2010 7)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기존 체제에 안주했던 스마트폰을 포함해 세계 최대의 휴대폰 제조사였던 노키아의 급격한 추락이 시작됐다. 그나마 일찌감치 스마트폰에 주력했던 대만의 HTC와 여러 운영체제의 휴대폰을 다 준비할 여력이 있었던 삼성전자가 선전하고 있다. 특히 삼성은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구글의 스마트폰용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갤럭시 시리즈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애플은 경쟁사인 삼성이 스마트폰의 특허와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것을 이유로 법정공방에까지 이르게 된다. 태권V가 마징가Z를 닮았다는 지적에 당시 로봇이라고는 마징가Z밖에 없어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는 김청기 감독의 말처럼, 후발주자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본격적으로 연 애플입장에서는 자사의 아이디어를 도용 당했다고 판단, 안드로이드를 채용한 삼성전자와 HTC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그림 1. 사실 아이폰의 특허소송의 기저에는 태권V와 마징가Z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매커니즘이 동작하고 있다. 태권V가 일본에서 개봉하려 했다면 원작자 나가이 고도 참지 않았을 것이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공급하던 구글이 얼마 전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했다. 휴대전화 생산능력을 갖게 되어 아쉬울 게 크게 없어진 구글이 지금처럼 제조사들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HTC는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사업을 하고 있지도 않은 MS에 특허 사용료로 매년 수천억 원을 지불하는 데 합의를 하였다. “MS가 노키아를 인수하지 않느냐?”는 미국 월가 발 ‘MS의 인수합병설이 한국 일반인들에게까지 들려올 정도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작금의 상황은 한마디로, 전통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업체들에게 치이고 당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소프트웨어가 주도권을 잡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변화에 부응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가장 빠른 수단이 바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하드웨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다(그림 참고).




우리가 설치해 사용하는 완성 프로그램은 게임과 워드프로세서 일부 그리고 백신을 비롯한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거의 전량 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요즘 들어 새로 소개되는 혁신적인 인터넷 서비스는 거의 외국계 서비스들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회사는 일반 사용자 대상의 애플리케이션이 아닌, 대부분 SI(System Integration)가 전문이다. SI는 인건비 비중이 큰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고용효과는 큰 반면, 부가가치 창출은낮다. 뭔가 개발되고 나면 재사용되고 부가가치가 창출되어야 하는데, 새로운 프로젝트에는 몇 사람이 몇 달 투입되느냐로 개발비를 다시 산정한다.
SI의 특징은 노하우라는 게 개발 툴에서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꼭 그만큼의 생산성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장비의 성능도 좋아지고 가격은 내려가서 성능을 끌어올릴 고급 소프트웨어 기술의 중요성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그림 2. 컴퓨터 성능의 최대 병목구간이던 저장장치를 메모리로 대체한다는 것이 SSD를 통해 본격 현실화 됐다. SSD의 등장은 그동안 이슈가 됐던 수많은 최적화 기술과 노하우의 중요성을 낮춰버리는 효과를 불러왔다.

게다가 SI라는 것이 누군가의 의뢰가 있어야 이뤄지는 것이라 태생적으로 의 입장일 수 밖에 없다. 경력만큼 급여와 존중이 함께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로 밖에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전산화 직군 외에는 특별한 진로가 없기 때문에 요즘 대학의 컴퓨터공학과는 예전만큼 인기가 없다. 2학년 때 전공을 정하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는 몇 년째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실력 있는 젊은이들은 게임업계로 간다.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은 SI를 위한 관리자와 늘 피곤한 표정의 젊은이들뿐이다. 전공 불문 몇 개월의 교육으로도 프로젝트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도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에너지가 바닥나 도태되는 사람들의 빈자리를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채우고 있다. ‘IT 사관학교라고 강조하던 한 대학의 광고 카피는 언제부터인가 공무원 사관학교로 바뀌어버렸다.


부동산 거품과 아이디어 거품은 달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서비스의 상당수가 우리나라에서 나왔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벤치마킹하기 급급했던 것이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MP3 플레이어, 소셜 네트워크, 인터넷 방송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사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용화 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 났길래 괜찮은 개발자들은 종적을 감추었고 소프트웨어라고 불릴만한 것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단 말일까?

2000년대 초,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대중은 어디를 가려워할지, 어떤 것을 좋아할지,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 낼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와 실행력에 대해 높은 가격을 매겨주던 시절이었다. 얼마 안 있어 닷컴 거품이 급격히 꺼지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엑소더스가 일어난다. 그 즈음부터 아이디어란 쫄딱 망하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것이라는 트라우마가 생겨났다. 수십수백 억원이 될 줄 알았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는 대상은 다르지만 정확히 그 10년 전에 있었던 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와도 비슷하다. 80년대 세계 최강국의 될 것 같이 기세 좋던 일본은 그때부터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녀석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고 차츰 세계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의 우리 소프트웨어의 위기가 시스템을 정비하고 개선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특별히 어떤 시스템이 잘 못되었다기보다도 이 같은 커다란 사건과 세계적 흐름과 맞물려 이렇게 흘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일련의 사태를 먼 산 바라보듯 관망하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여타 장치산업에 비해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휴대전화만 해도 대표적 수출 효자 산업인데다가 다른 산업에 비해 고용효과도 크다.

아이디어와 소프트웨어는 한 세트
요즘 같은 초고도화 정보통신사회에서 아이디어와 소프트웨어는 한 세트이다. 아이디어에 적절한 가격이 매겨진다면, 그만큼 새롭고 혁신적인 소프트웨어가 나올 것이다. 시스템이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강력한 보호일 것이다. 아이디어를 지적재산권화해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대부분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개발자 개개인도 지적 재산권 보호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침해 당했을 때 적극 대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이 강화되면서 수익배분에 대한 체계가 갖춰지면서 몇 년 새 음악가들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고, 그들의 음악이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소프트웨어의 위기가 꼭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자사의 애매한 위치에 있던 자체 운영체제를 집중 개발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시장에서 성공여부를 떠나 자체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계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본다. 아이폰 덕에 프로그래밍 서적이 대형 서점의 목 좋은 가판대에 다시 진열되기 시작했다.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공급에 비해 늘어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 대한 수요는 현업 개발자 개개인들에게는 큰 호재이다.




<출처: HIS advantage 2011,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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